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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라리 죽어서라도… 4㎡ 쇠감옥서 탈출하고 싶어요”
이름 관리자 작성일   2017.07.01

한 평(3.3m²)이 조금 넘는 철창 안에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드러누워 있다. 기자가 다가가자 한 마리가 간격이 5cm도 채 안 되는 쇠창살 사이로 코를 들이민다.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리는 다른 한 마리의 코는 앞쪽이 뭉텅 잘려나가 있다. “어미가 어릴 적에 물어뜯었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전국사육곰협회 김광수 사무국장의 말이다.

충남 당진에 있는 그의 곰 농장엔 약 20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 웅담(熊膽·곰의 쓸개)을 위해 길러진 이들은 평생 딱 한 번 웅담이 채취된 뒤 죽어서야 비로소 철창에서 나온다. 그나마 요즘에는 어렵게 됐다. 웅담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생식능력마저 거세된 이들은 이제 병사나 자연사하지 않는 이상 꼼짝없이 철창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다. 이런 곰들이 전국에 약 660마리가 있다. 지금부터 곰들이 가상의 육성으로 밝힌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사육 반달가슴곰 A의 이야기 

안녕. 난 2015년에 태어난 세 살배기 반달가슴곰 A야. 천연기념물 제329호인 ‘우수리산’ 반달가슴곰과 같은 반달가슴곰이지만 종자가 다른 사육 곰이다 보니 이름조차 없어. 태어나 보니 검은 철창 안이었고 엄마는 어릴 때 다른 철창으로 옮긴 건지 기억나지 않아.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엄마한테 코를 물어뜯긴 녀석도 있거든. 여하튼 지금은 다른 곰 한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단다.

나는 이 농장에서 태어난 마지막 곰이야. 2014∼2016년 한국 정부가 약 55억 원을 들여 우리의 생식기를 모두 거세하거나 불임화하는 사업을 벌였거든. 곰 사육정책을 폐지하기 위해서였지. 거세나 불임은 잔인하다며 관람용이나 생태체험용으로 돌리자고 도와준 사람들도 있었어. 하지만 매입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   

우리 선조들이 처음 이 땅에 온 건 1981년이야. 애초에는 곰을 키운 뒤 재수출해 외화를 벌어볼 목적이었대. 4년간 총 493마리를 들여왔다는군. 하지만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1985년 돌연 수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 정부가 적극 장려해 곰을 들였던 농장들은 판로를 국내로 전환해야 했어.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태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던 우리들은 어느덧 1000마리 넘게 늘어났고, 정부는 결국 1999년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24년 이상 나이 먹은 곰은 웅담을 채취해도 된다는 기준을 들였어. 사육 곰 도살을 합법화한 거지. 그래도 곰 사육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곰의 이용은 쓸개로만 제한했어. 우리가 죽으면 쓸개는 빼내고 나머지 살과 가죽은 모두 버려야 해.


즉, 우리는 고작 인간의 주먹 크기만 한 쓸개를 위해 좁디좁은 철창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어. 사육주들의 요청에 따라 2005년 도축 가능 나이가 24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앞당겨졌지만 웅담 수요가 줄면서 사육 곰 숫자는 좀체 줄지 않았어. 2012년 환경부 조사 당시 전국에 53개 농가 998마리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대.

내게 주어진 4m²의 세상 

사육곰관리지침에 따르면 곰 한 마리당 최소 4m²의 공간이 주어져야 해. 하지만 중성화 수술을 받아들인 농장은 규제 유예 대상이 돼 나처럼 한 평짜리 철창에 두 마리씩 사는 경우도 많아. 2년째 종일 먹고 싸고 자고 좀 뒤척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나마 예전에는 분변이 그대로 우리 안에 쌓였는데, 농장주가 철창과 바닥을 띄우는 개조 공사를 해준 덕에 그런 신세는 면했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야. 이런 개조 공사를 하지 않은 농장이 많거든.  

언제부터인가 사료가 빵이나 도넛으로 대체되는 날이 많아졌어. 몇 달째 웅담을 찾는 손님이 없다 보니 농장주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걸 어쩌겠어. 올 들어서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니까. 좁은 철창에 가만히 누워 빵과 기름진 것을 먹으니 건강에도 좋을 리 없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몸이 아픈 녀석들도 꽤 있을 거야. 털이 숭숭 빠져 맨살이 다 드러난 곰이나 너무 살이 찌다 못해 굴러다닐 것 같은 곰도 여럿이니까.  

어떤 녀석들은 스트레스로 같은 방 곰을 다치게 하거나 자해(自害)하기도 해. 귀나 손이 하나 없는 곰들이 수두룩하고 인간이 다가가면 철창을 쾅쾅 치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녀석들도 있거든. 대부분은 머리를 벽에 찧는다든가 하는 정형행동(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이지. 

그런 애들 중 종종 녹이 슨 곳을 뜯어내 탈출하는 곰도 있다고 하더라고. 곰 사육 역사가 30년을 넘어가다 보니 시설이 낡고 노후한 곳이 많거든. 4월 경기 김포에서도 사육 곰 한 마리가 탈출했다가 40여 분 만에 붙잡혔대. 1990년대 중반 이래 알려진 탈출만 20건이 넘는다는군.  

‘왜 그렇게 사니? 미련 곰탱아’ 

녹색연합이라는 환경단체는 2003년부터 우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어. 국회의원을 설득해 사육 곰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을 내고 환경부를 움직여 실태 조사와 관리 방안 연구도 했지. 혹시 버스나 택시정류장에서 ‘왜 그렇게 사니? 미련 곰탱아’라는 광고판을 본 적 있니? 녹색연합이 만든 사육 곰 폐지 캠페인이야.

하지만 인간들의 관심은 뉴스나 프로그램 나올 때 반짝하고 그뿐이야. 개나 고양이같이 친숙한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는 크게 화제가 되는데 우리 이야기는 그렇지 않더군. 2010, 2013년에 발의된 3개의 특별법 모두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대. 2013년 정부는 전 개체 중성화 시술을 결정해 2014년 389마리, 2015년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557마리, 2016년 21마리가 생식기를 훼손하는 불임시술을 당했어.

2015년에 태어난 내가 도축 가능한 나이인 열 살이 되려면 아직 7년의 세월이 남아있어. 그 전에는 도축이 불법이기 때문에 난 최소 7년, 길게는 20년(평균수명 25∼30년)을 더 이 좁디좁은 철창 안에 갇혀 지내야 해. 죽어서라도 여길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하지만 웅담 찾는 사람이 줄었다니 그마저 불가능할 거 같아. 이미 2005년 녹색연합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웅담을 구입한 적도 없고 구입할 생각도 없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95.6%였대. 현재 36개 농가 약 660마리의 남은 곰 중에 500마리가 10년 이상된 도축 가능한 곰들로 추정돼.

 

농장주들은 애초 정부가 장려한 사업인 만큼 정부가 곰들을 적당한 가격에 매입 및 처리해주길 바라고 있어. 시민단체들은 정부에 생태공원 조성 등을 계속 요청하고 있고. 하지만 정부는 일단 중성화 수술을 한 만큼 지켜보며 천천히 대책을 강구하자는 입장이라나 봐.

듣자하니 최근에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복원된 천연기념물 반달가슴곰이 경북 김천까지 가서 붙잡혔다면서? 자유롭게 산과 들을 누볐을 그 녀석을 생각하니 같은 곰인데 너무도 다른 처지에 씁쓸하더라.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마스코트가 반달가슴곰이라던데, 우습게도 여긴 장애(障碍) 곰 천지야. 우리가 죽기 전에 흙을, 풀을, 웅덩이를 디뎌볼 날이 있을까?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Society/3/all/20170701/85147740/1#csidxfdfe70ca29269ce9c97e567bb9544c5

 

동아일보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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